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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여자라고 할수 있는 나이는 몇살일까요

白 泉 2014. 6. 2. 08:54
 

 늙은여자라고 할수 있는 나이는 몇살일까요?

박완서 선생님이

1979년에 발표한 "황혼"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도 없는 “늙은 여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소설에 등장하는 "늙은 여자"의 나이는
60대도 아닌 50대 여자입니다.
젊은 여자는 30대 이구요.


지금 50대 여자를

늙은 여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주거 형태가

아파트로 바뀌기 시작 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서 그런지
노인은(!)

뒷방 늙은이 취급이 당연했었나 봅니다.

소설이라는 것이

시대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36년 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소설을 읽을 즈음엔

소설속의 젊은 여자보다 어린 나이라
젊은 여자 입장에서 소설을 읽었고

50대인 우리 어머니가 많이 늙으신 걸로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거부감 없었습니다.


지금 소설속의 늙은 여자보다 더 나이 들고 보니

젊은 여자의 행태가 몹시 얄밉고

늙은 여자가

아들에 대한 의존으로 미리 자기를 포기하고 산
그 시대의

여인들의 보편적인 여인들의 삶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자는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아들에게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제도하에

남자 중심의

종속적인 삶을 강요받았던 시대의 이야깁니다.


소설 속의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가 근심 덩어리 입니다.
햇볕도 들지 않는 부엌에 달린 식모방,

지금으로 치면
창고 정도로 사용하는 골방이 늙은 여자 방입니다.
아파트의 세련된 공간에 늙은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이
젊은 여자에게는 구색이 맞지 않는 일입니다.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아이들을 시켜서
"할머니 식사하시라고 해라."고 할 정도로

귀찮은 존재입니다.
늙은 여자는

하루에 밥 세끼만 먹고 뒷방에 감금된 생활입니다.


다행히

텔레비전은 한대 있었나 봅니다.

뭔지 모를 속병을 앓고 있어서

식사를 못하고 혼자 생각이 깊어지자
오래전 늙은 여자의

시어머니가 속병을 앓다 돌아가신 것이 생각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려고 했습니다.
젊은 여자의

도움 없이는 병원도 혼자 못 가고 끙끙거리는
늙은 여자의 모습이 소설 속에 있습니다.


요즘엔

50대 여자를 늙은 여자라고 칭하지 않고
창고 방에 텔레비전과 함께 가두지도 않고

그렇게 처신할 50대도 없습니다.
병원도 혼자 다닐 수 있고

어쩌면 젊은 여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힘 있는 50대가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해 못 할 부분이 전화 이야깁니다.
지난 휴대폰 글에 이어서

집 전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앞의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1970년대는 휴대폰이 나오기 이전이고

전화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 전화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청약을 해 놓고도 몇 년을 기다려야

겨우 집 전화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즉시개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청약금도 30만원인가를 선납했습니다.
(당시 대기업 과장 월급이 30만 원 정도입니다.)


특히

백색전화라고 해서 양도가 가능한 전화는

한대에 200만원에 거래되었습니다.
시영아파트 13평 분양가가 260만 원 정도 할 때

200만원은 어마어마하게 비싼 전화라

전화기가 부의 상징일 만도 했습니다.


황혼 속에 나오는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가 사는 아파트에는
전화기가 안방과 늙은 여자 방에서

동시에 받을 수 있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걸 '쁘라찌' 해서 쓴다고 말했습니다.)


전화가 걸려오면

대게는 안방에서 젊은 여자가 받지만
젊은 여자가 외출 중에는 늙은 여자가 받습니다.
전화벨이 여러 번 울려도

안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늙은 여자가 수화기를 들었는데

젊은 여자와 동시에 받게 되었나 봅니다.


들었던 수화기를 놓으면 딸깍 소리가 나서

본의 아니게 엿들은 표가 나니까
수화기를 들고 있으면서

젊은 여자가 친구와 하는 통화를 듣게 됩니다.

젊은 여자는

늙은 여자가 자기 손을 끌어다가 배를 만져 보라고 하고
아들에게도 그랬다고 흉을 보면서

프로이트까지 들먹이며

늙어서도
성욕이 남아 있는 추잡한 노인 취급을 합니다.


성욕은 인류 영원의 문제라고

거북한 명치를 쓸어줄 타인의 손을 그리워하는 것도
성욕이라고 하는 말에 분개합니다.
늙은 여자는

과부가 되어 외아들을 그리면서

늙어서 혼자 살게 될까봐 두려워했지만


현재는

아들 가족과 함께 살지만

혼자 사는 것 보다 더 나쁘고
정말 불쌍한 여자는

혼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 뜻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남의 통화내용을 엿 듣는 일은

요즘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요즘엔

휴대폰 통화 내역이나 카톡을 훔쳐보는 것으로 하겠지요.)
안방에서 골방에서 동시에 전화를 드는 일은 없어서
요즘 소설엔 등장할 수 없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골방이라는 공간도 그렇고
전화 한 대를 이방 저 방에서 동시에 쓰는 것도 그렇고
50대 여자가 늙은 여자 취급을 받는 것도
요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옛날 옛적일이 되었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황혼"이 발표 된지 36년이 흘러
강산이 변해도 4번이나 변하고도 남았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박완서님의 소설 "황혼"을 보실 분은

소리울님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세요.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userId=

cheonhabubu&logId=5058728


by/순이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