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얼굴이 서로 다르듯이 그 인생도 다르다.)
◆인생은 본인이쓰는 대(大)서사시(敍事詩)이다.
한국에서는
환갑을 기점(基点)으로 노인이라 칭할 수 있겠으나
미국에서는
만 63세가 되는 생일부터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 부른다.
난
아직 2년이 남았으니
한국에 가면 노인이 되겠지만
미국에서는 아직 아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 주려고
중학교 때부터
매년 여름방학에 한국에 보내서
프로그램에 참여 시켰다.
그 결과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았는데
내가 이순(耳順) 즈음해서는
내 정체성에 대한 혼란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내가 인생의 반 이상을 미국에 살아서인지,
아니면
내 나이에
대부분 겪는 증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동안 좀 헤매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그런 문제에 대하여
벗어난 것은 아직 아니다.
어느 것은 한국식이 좋고,
또
어느 것은 미국식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내 편리를 위하여 취사선택을 하다 보면
상대가 혼동을 하게 된다.
속된말로
' 미국 놈도 아니고 한국 놈도 아닌'
묘한 아이덴티가 된다.
다른 민족과 섞여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다.

그 때 마침 읽던 소설에,
서기라는 사람이
금강산에 있는 스승을 찾아가서
자신의 도(道)를
깨우쳐 달라고 하는 대목이 나왔다.
그 스승은
“네가 갖고 있는 지식을 다 비우라”고 하면서
매일 일만 시켰다.
열 받은 이 사람은
자신이 속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곳을 떠났는데
다른 스승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질책을 한다.
분명히
어떤 것을 놓쳤는지 본인도 모르면서
서기는 자신이 경박하다고 자책한다.
사람은
직접 이해상관이 있는 사람의 말 보다는
제삼자의
설명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을 다 버려라…”
지식은
미망(迷妄)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옛 성현의 제자들은
그 스승의 사상에 심취되어 직업도,
가족도 버리고 따라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출세가 보장되거나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몇 일씩 굶으면서 따라 다녀도 행복했고
또
그 스승을 위하여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도 하였다.
그게
바로 정신 세계의 충족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버리라고 한다.
그 지식으로
미망(迷妄)이 해결 되었으면
그 일에 대하여
더 이상 집착하지 말라는 것으로
나는 이해를 한다.
세상은
합리와 불합리가 공존 하면서
질서라는
또 다른 메카니즘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흔히
빈손으로 왔다(空手來)가
빈손으로 가(空手去)는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온 것은 맞다.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는
빈 손으로 가는 게 아니라
사랑과 미움, 회한(悔恨)과 미련(未練)을
간직한 채 떠난다.
남아있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가 남겨두고 간
그리움이나 원망이 있다.
그 대상이 없어졌으니
그게
한(恨)이 되어 병을 앓는 이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한다.
나그네란
주인이 아니라 객(客)이란 말이다.
객(客)은
무엇을 주관(主管)할 위치에 있지 않으니
피동적인 사고(思考)와 행동으로 족하다.
그러니
내가 책임질 일도 없으며
잘못된 것은 다 남 탓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에
노년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좋은 말들이 많이 올라온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 이유는
노년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젊어서나 늙어서나
옳고, 그름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내가 먹은 음식은
내 스스로 소화해서 배설하는 것처럼
내 인생은
내가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누구의 조언을 들었다 해도
그 결정과 행동은 내 몫이니
그게 바로
‘내가 쓰는 내 인생의 서사시(敍事詩)’가 되는 것이다.
자연은 계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 순리(順理)를 일깨워 준다.
화려한 꽃이 만개하는 봄 못지않게
단풍에 물든 가을의 산은 아름답다.
멀리 서서 감상을 할수록
그 장관을 음미(吟味)할 수가 있으니
그것도 봄과 다르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어느덧 그 가을에 와 있다.
그 단풍에
걸 맞는 아름다운 채색으로
인생의 에필로그를 써야 한다.
그게
이 세상에 오게 된
어떤
섭리(攝理)에 순응을 하는 것이고
또
보람된 일이 되리라 생각 한다.
by/소석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