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과영상/좋은 글 모음 밥푸는 순서 白 泉 2014. 5. 17. 09:03 밥푸는 순서 친정에 가면 어머니는 꼭 밥을 먹여 보내려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친정에 가면 부엌에도 못들어 오게 하셨고 오남매의 맞이라 그러셨는지 남동생이나 당신보다 항상 내 밥을 먼저 퍼주셨다.어느날 오랜만에 친정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여느 때처럼 제일 먼저 푼 밥을 내앞에 놓자 어머니가 "얘 그거 내 밥이다" 하시는 것이었다. 민망한 마음에 "엄마 왠일이유? 늘 내밥을 먼저 퍼주시더니..."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게 아니고, 누가 그러더라 밥 푸는순서대로 죽는다고 아무래도 내가 먼저 죽어야 안되겠나." 그 뒤로 어머니는 늘 당신 밥부터 푸셨다. 그리고 그 이듬해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그 얘기를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남편과 나, 중에 누구 밥을 먼저 풀 것인가을 많이 생각했다. 그러다 남편밥을 먼저 푸기로 했다. 홀아비 삼년에 이가 서말이고 과부 삼년에는 깨가 서말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뒷바라지 해주는 아내 없는 남편은 한없이 처량할 것 같아서이다.더구나 달랑 딸 하나 있는데 딸아이가 친정아버지를 모시려면 무척 힘들 것이다.만에 하나 남편이 아프면 어찌하겠는가? 더더욱 내가 옆에 있어야 할것 같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통 스럽더라도 내가 더 오래 살아서 남편을 끝가지 보살펴주고 뒤따라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때부터 줄곧 남편 밥을 먼저 푸고있다. 남편은 물론 모른다. 혹, 알게되면 남편은 내 밥부터 푸라고 할까? 남편도 내 생각과 같을까? 원하건대 우리 두사람, 되도록 의좋게 살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중에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 이규용 제공-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전도서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