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할배의 서글픈 일기(日記)♣
♣늙은 할배의 서글픈 일기(日記)♣
일평생(一平生) 땅만 파먹고 사신 농부(農夫)
가 있었다, 개구리, 물방개, 잠자리, 바람,
잡풀사이에서 새벽부터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땅만 파고 살았다.
밭두렁에 살구꽃 피는 봄이면 황소로
논을 갈고 거름을 내고, 못자리를 내어
볍씨를 뿌리고 숨이 칵칵 막히는 7-8月
땡볕에는 목줄을 타고 내리는 땀 소금
덩어리가 그의 논밭에 흘리는 것이 서너
말은 넘었으리라.
흉년이 들어, 온 식구(食口)들이 먹거리가
떨어졌 던 어느 해는 달랑 괭이 하나, 지게
하나만 갖고 석 달이 넘도록 척박한 땅을
일구다가 등허리에 등창이 나고 헐은 그의
등허리에 파리 가 쉬를 실어 구더기가 일었다.
그 이후(以後)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열심
(熱心)이 일 하는 사람을 보고는 덕명이 일
하 듯 한다 혹은 덕명이보다 더 지독하다 했
고 그의 이름 석자 그 자체(自體)가 그 지방
(地方)에서 일 잘 하는 대명사(代名詞)가 되
어갔다.
그렇게 순 땅만 파먹고 뼈가 녹도록 일하여
구남매(九男妹)를 다 키워 객지(客地)로 내 보
내고 어느 정도(程度) 살만하니 할머니가 먼저
덜컥 세상(世上)을 뜨셨다, 객지 자식(客地 子息)
들에게 부담(負擔) 된다며 홀로 고향(故鄕)에서
지접(直接) 밥을 지어 먹고 살다가 나이가 팔십
(八十)을 넘기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더 이상 농사
(以上 農事)도 못 지 을 정도(程度)로 육신(肉身)
이 노쇠(老衰)해지자 金 老人은 땅 을 팔고 고향
(故鄕) 집을 버리고 서울로 갔다.
왜냐하면 서울에 사는 아들들이 하나같이
아부지요, 우리가 노후(老後)를 편하게 모실
테니 땅 팔아서 서울로 올라 오이소 했기 때문
이다, 보따리를 싸서 고향(故鄕)을 떠나 서울로
간 金 老人이 무슨 연유(緣由)인지 3개월(個 月)
만에 다시 고향(故鄕)으로 내려 오셨다.
밝은 대낮에는 故鄕 마실로 들어서기 부끄러워
읍내에서 서성거리다가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故鄕 마을로 돌아와서, 버리고 간 故鄕 빈집
으로 더듬더듬 다시 들어가셨는데 간간히 꺼이
꺼이 낮은 울음소리가 새벽이 다 되도록 들렸다.
故鄕 빈집에서 며칠 밤을 보내시고 새벽에 일어
나 마당 우물물로 목욕(沐浴)을 하고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 주신 깨끗한 한복(韓服)을
갈아입으시 고………다시 故鄕 집을 나섰다.
마침 느티나무 아래서 당파 씨를 고르던 이웃집
시울실 할매와 구담댁 할매가 뽀오? 韓服을 입고
나서는 김 老人을 보시고는 저 어르신 아침부터
옷을 말끔하게 갈아입고 어디가시노……?
서울 잘 사는 아들한데 호강하러 가신분이 저렇
게 돌아와서 당체 말도 아니하니시 맴이 아프이더,
어제 아침에 죽을 끓여서 갖다드렸는데 한 숟가락도
안 먹었띠더…… 당뇨도 더 심하고……
이제 허리 병(病)도 도져서 걸음도 잘 못 걸으실 것
같다하더니……
읍내 약(藥) 사러 가는 모양있시더! 빈집에 전기
(電機)도 없어 우짜닛껴! 전기(電機)는 어제 동장
(洞長) 말로는 다음 주(週)에 불 키도록 한전(韓電)
에서 다시 전기(電機) 넣어 준다 카디더만……남의
못타리씨더 당파 씨에 묻은 흙먼지를 털털 털면서
구담댁 할매가 그 많튼 문전옥답(門前沃畓) 다 팔아
子息들 한데 다 떼이뿌고……늙으막에 남의 일 같지
안니더……휴……하고 긴 한숨을 솥아 내쉬었다.
시울실 할매와 구담 할매가 걱정스러운 듯이
가만가만 힘겹게 걸어가시는 김 老人 쪽을 바라
보는데……金 老人은 읍내 길로 아니 가시고
참 진달래꽃이 붉게 피어 있는 마을 앞 山으로
오르셨다, 저 어르신 어디가는데……읍내로 안
가시고 앞山으로 올라 가시노? 할마이 묘(墓)에
가시나…이제 와서 할마이 묘(墓)에 간들 무슨
소용(所用)있닛껴……시울실 할매가 당파 뿌리를
조금전 보다 더 쎄게 땅에 탈탈 털면서 눈시울을
훔치셨다.
그날 해가 어둑어둑해져도 앞山으로 오르신 할아
버지는 마을로 내려오시지 않았다, 다음 날……
동네 할매들이 김 老人 빈집 처마에 반쯤 비어
있는 농약병(農藥甁)을 들고는 우얏꼬 우앗꼬
탄식(歎息)을 하며 눈물을 훔치셨고 읍내 형사
(刑事)들이 전경(戰警)들을 앞세우고 앞산(山)
김노인(金 老人) 할머니 산소(山所) 쪽으로
급(急)하게 뛰어 올라가고 마을 어귀에는 읍내
권 병원(病院) 앰불런스 한대가 다급(多急)하게
왱왱 거리면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8年이 흘렀다, 늙은 농부(農夫)가 사시던
고향(故鄕) 집은 다 허물어지고 늙은 노인(老人)
이 살아 생전(生前)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거름을
가득이 지고 논밭으로 다니시던 지게에는 지난 해
피었던 해묵은 나팔꽃 줄기가 걸쳐 있었다.
[黃昏의美學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