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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있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白 泉
2015. 6. 14. 16:53
![]() 남편과 나는 1994년 성당에서 만났다. 그는 수녀가 되려던 나에게 삭발까지 하고 구애를 했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결혼이었다. 변변한 직장이 없던 그를 우리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는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한 일인지 알려준 사람이었다. 봄, 우리는 결혼했고, 곧 영훈이를 낳았다. 이어 둘째 규빈이도 생겼다. 임신 3개월째, 가장 행복해야 할 때 갑자기 남편이 쓰러졌다. 첫 번째 발병이었다. 친정 식구들은 유산을 권했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고생할 막내딸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고집을 부려 규빈이를 낳았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남편이 완쾌 판정을 받은 것이다. 왼쪽 대장을 상당 부분 잘라내고 그 힘들다는 항암 치료를 견디며 남편은 완치되었다. 남편에게 가족은 힘이었고, 버티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암은 또다시 남편을 찾아왔다. 이미 복부 림프절까지 전이되었지만 차마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암은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었다. CT 촬영을 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힘내, 응? 힘내." 그러나 무슨 말로 그를 위로할 수 있을까. 12월 21일 오전, 남편에게 극심한 호흡 곤란이 왔다. "조금만 힘내.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응? 애들 데리고 올 거야. 눈 떠봐. 응?" 남편의 숨소리가 거칠다. 여전히 따뜻한 그의 손. 나는 아직 이 손을 놓을 수가 없다. 학교에 있던 아이들을 막내 삼촌이 데려왔다. 아이들이 서럽게 운다. 늦기 전에 말해야 한다.
"아빠, 고맙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그는 들었을까?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후 2시 55분. 남편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만나고 사랑하고 부부가 된 지 9년 8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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