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 泉 2018. 1. 14. 09:49
 
 
 
구름 같은 인생

세월은 정말 빨리도 흘러간다. 십대의 철부지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거울 속의 모습은 완전한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장수하기를 소원한다. 또한 누구나 늙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두 가지 말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이 되는 내용이다. 장수하려면 당연히 나이가 많아지고 늙어야 되는데, 장수하는 것은 원하면서도 늙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장수하면서 늙지 않는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한 마디로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달리는 기차는 혹시 붙잡아둘 수 있어도, 흐르는 세월은 결코 붙잡아 두지를 못한다. 누구라도 늙어짐에서 예외일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리 나이가 적고 젊다고 할지라도 잠시 잠깐 그럴 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 들어 면역력이 떨어지면 질병에도 약하다. 감기라도 된통 앓고 나면 그만큼 폭삭 늙는 것을 느낀다.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하나는 중년의 여자분 이야기다. 그는 평소 책도 쓰고 신문에 자주 기고하는 분이다. 한번은 지방에 갔는데 한 젊은 여자가 자기를 알아보더란다.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건넨 인사말이 마음에 탁 걸렸다. 그 인사말은 이런 것이었다. “어머,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나요..? 직접 뵈니까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더 고우시네요.” 자신은 여태껏 한 번도 자기가 늙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늙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그냥 곱다고 하면 될 것이지 왜 늙었다는 말을 붙이는지 생각할수록 심통이 나더라고 말한다.

또 하나는 소유한 제네시스 승용차가 기름을 많이 먹는다. 그래서 혼자 어디를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경로석을 이용해도 되는 나이가 훨씬 지났지만 맘속으로 나는 40대야 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에 자리가 비어 있어도 앉지를 않는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선 선채로 핸드폰에 뜨는 뉴스를 읽고 있었는데,뒤에서 청년의 음성이 들려왔다.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요즘에도 저런 기특한 청년이 있구나 싶어 무심코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다가오면서 다시 말하는 것이다. “할아버지,저쪽에 가서 앉으세요.” 나는 늘상 아직은 늙지 않았다고 생각하다가 그 말을 듣고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속으로 “야! 내가 왜 할아버지냐..?” 하면서 고개를 홱 돌리고 못 들은 척 하면서 보던 핸드폰에 열중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사실은 6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연령이 높아지는 반면, 사람들은 나이 드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나이가 들지 않는 게 아닌데 말이다. 분명히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는 들어간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이런 저런 변화들이 생기게 된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도 생긴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도 생길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고, 나이의 무게에 짓눌려 살다가 인생을 마치게 된다. 며칠 전 지인이 부친상을 당했다고 부고문자를 보내왔다. 장례식장은 아산병원이었다. 토요일 오후였는데 비바람에 천둥번개 까지 참으로 험상궂은 날씨였다. 초행길이었는데 용케도 잘 찾아 들어갔다. 조문을 하고 지인과 함께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지인의 부친이 백세를 사시고 돌아가셨다고 말을 한다. 언젠가부터 인지 모르게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불리어지더니 백세를 넘게 사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백세면 백년의 삶인데 지인이 하는 말은 백년이라고 해도 인생은 구름 같은 것이라고 말을 한다. 구름 같은 인생이다. 부자로 살건 가난뱅이로 살건 다 구름 같은 인생이다. 푸른 하늘에 떠서 흘러가는 인생이기에 지금의 부귀영화, 권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옮긴글>